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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인피플] ‘마트업계의 최고 브레인’ 동양할인마트 박용만 대표이사“중소상인을 살려야 나라 경제도 삽니다”
노익희 기자  |  gcns0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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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6  18: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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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출범한 전국마트협회가 금년 사단법인 한국마트협회로 인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협회는 중소마트의 공동구입과 판매, 마케팅, 회원간의 협력, 창업 및 운영기술 지원등의 활발한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골목상권에 뿌리를 둔 전국의 중소마트 2000여 회원사와 회원들로 구성된 한국마트협회는 6만 중소마트의 유통전문지인 마트인의 발전과 함께 성장할 전망이다. 박용만 경기북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동양할인마트 대표이사를 인터뷰했다. <편집자 주>


일찍이 ‘마트=할인점’이라는 파격적인 시도로 큰 주목을 받았던 사람!

   
 
일찍이 공동구매를 목적으로 하는 협동조합을 설립, 공동물류회사의 전초기지를 만든 사람!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 소재한 동양할인마트 박용만 대표이사(55세)는 마트업계의 최고 브레인으로 통한다. 언제나 새로운 시도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내는 아이콘이 되고 있는데
그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남달랐던 슈퍼주인

대기업 식품회사에서 잘 나가던 영업맨!
그런데 왜였을까?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조그마한 슈퍼를 시작했던 사람!
동양할인마트 박용만 대표이사가 20대 후반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서 50평 규모의 슈퍼를 시작할 때는 한 가지 꿈이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이야 낯익은 마트 모습이 됐지만 1990년 당시로선 생소했던 대형 할인점을 해보면 어떨까 했어요. 식품뿐 아니라 청과야채, 공산품, 잡화까지 아우르는 토탈 매장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였을까? 슈퍼 주인으로 변신한 그의 행보는 시작부터 남달랐다. 슈퍼에 앉아서 물건을 팔지 않았다. 날마다 발품을 팔았다.
“아침 일찍 물건을 세팅해 놓고 오전 10시면 어김없이 영업을 나갔어요. 오전에는 인근 사무실, 보험회사, 은행, 관공서 등을 돌며 영업을 했고, 오후에는 레스토랑, 카페, 식당 등을 돌며 식자재 공급 라인을 뚫기 위해 발품을 팔았어요.”
전화 한 통이면 되는 영업 전략을 펼쳤다. 배달로 승부를 걸었던 것이다. 커피 납품부터 종이컵, 화장지까지 원하는 것이면 뭐든 배달해줬다.

이 같은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대박을 쳤다. 주문 전화가 쇄도했던 것이다. 박용만 대표이사는 “낙원동에서 시작했던 슈퍼가 1년 만에 큰 성공을 거두면서 파죽지세로 사업 역량을 펼쳐나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낙원동 슈퍼를 팔고 남긴 이윤으로 서울 강남 요지에 새롭게 슈퍼 문을 열었고, 여기서도 대박행진은 이어졌다. 그 여세를 몰아 1993년에는 슈퍼를 시작하면서 꿈꾸던 청사진의 일단도 펼치기 시작했다. 경기도 산본 신도시가 개발될 때 300평 규모의 대형 공판장을 열었던 것이다.
“그 당시 국내에는 아직 대형마트가 등장하지 않았던 때였어요. 이마트도 없었고, 홈플러스도 없었죠. 그런 시절에 산본 신도시에 대형마트와 같은 대형 공판장의 문을 열었어요.”
야심차게 시작한 일이었다. 청과야채, 공산품, 식자재까지 두루 갖춘 대형 마트 개념이었다. 고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틀림없는 성공을 낙관했다.
그런데 호사다마였을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그를 가로막았다. IMF였다. 야심차게 문을 연 대형 공판장이 궤도에 오를 즈음 느닷없이 불어 닥친 IMF는 박용만 대표이사에게도 일생일대의 시련을 안겨주었다.

실패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

   
동양할인마트 박용만 대표이사는 마트업계에 할인점의 개념을 도입해 큰 히트를 치고 2014년 대한민국유통대상에서 산업부장관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마트인상을 보여줬다.
시작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던 박용만 대표이사였다. 실패를 몰랐던 그였다. 하지만 IMF의 높은 파고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갔다. 거래처가 무너지면서 적자폭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결국 부도라는 막다른 코너로 몰렸을 때 그가 일군 모든 것도 바람처럼 사라졌다.
박용만 대표이사는 “처음으로 맛본 실패의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며 “상황이 정리되었을 때는 거의 맨몸이다시피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결코 주저앉지 않았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여겼다. 새로운 시도로 승부수를 던진 것도 그런 배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 처음 슈퍼를 시작할 때 그려본 청사진!
“경기도 구리로 가서 이른바 ‘할인마트’를 오픈했어요. 지금이야 대중화되었지만 1999년 당시로서는 중소 할인마트는 등장하지 않았던 때였는데 한 번 시작해보자 결심했어요.”
살던 아파트를 팔고 월세로 들어가면서 끌어 모은 돈으로 마련한 할인마트였다. ‘동양할인마트’라는 이름을 내걸고 중소 할인마트의 신모델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이 통했다.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대박을 쳤던 것이다. 구리에서 동양할인마트라는 이름을 내걸고 영업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제2의 동양할인마트를 오픈하는 기염까지 토했다. 경기도 남양주에 동양할인마트 2호점을 오픈했던 것이다.
그 여세를 몰아 해마다 마트 수를 늘리며 또다시 탄탄대로를 달려온 박용만 대표이사! 경기도 구리에 2곳, 경기도 남양주에 2곳, 경기도 용인에 1곳, 강원도 춘천에 1곳의 마트를 운영하며 성공가도를 달려왔는데 그 노하우는 과연 뭐였을까?

동양할인마트의 유명세 뒤에는…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박용만 대표이사에게 재기의 발판이 돼 준 동양할인마트는 초고속 성장을 한 마트로 유명하다. 경기도 구리, 남양주 일대를 주름잡으며 박용만 대표이사에게도 큰 성공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그가 쏟아 부은 노력은 말로 다 못 한다. 박용만 대표이사가 동양할인마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필살기로 내세운 것은 크게 3가지였다고 한다.
1. 박리다매로 승부하기
동양할인마트에 가면 무조건 싸다는 이미지가 생기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세일 품목을 최대한 많이 가지고 영업 전략을 짰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지 구매가 필수였다. 날마다 새벽 찬바람 마다않고 산지로 가서 직거래 품목을 늘렸다.
특히 남양주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으로 청과야채는 산지와 가까워 성공포인트가 됐다. 신선한 청과야채를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어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다른 품목도 덩달아 잘 팔리고, 그러면서 세일 품목도 날로 늘어나자 매출액은 고공행진을 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2. 공동물류회사 설립도 한몫
마트를 하면서 성공도 해보고, 실패도 맛보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그것은 분명했다. 질 좋은 물건을 싸게 팔면 성공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거였다.
그래서였다. 승부수를 던졌다. 마트를 하는 10여 곳 업체들과 힘을 모아 공동물류회사를 만들었다. 이레GL협동조합을 설립했던 것이다.
공동구매를 목적으로 설립된 협동조합이어서 가격 면에서 일대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청과에서 가공, 건어물까지 모든 품목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소비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3. 지역민들로부터 받은 사랑 환원하기
동양할인마트배 조기축구대회, 어린이날 선물주기, 어버이날 어버이 대잔치 열기….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기 위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실천하는 행사들이다. 특히 2012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동양할인마트배 조기축구대회는 매년 3월부터 리그전을 펼쳐 9~10월에 결승전을 치른다. 그야말로 온 지역민들의 축제처럼 열린다.
박용만 대표이사는 “지역민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지역민들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앞장선 것이 17년간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이유인 것 같다.”고 말한다.

“중소상인을 살려야 나라 경제도 삽니다”

오늘도 지역민들의 열렬한 호응 속에서 동양할인마트는 북새통을 이룬다. 질 좋은 상품을 보다 저렴하게 공급하고자 하는 박용만 대표이사의 경영 철학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 같은 경영 마인드 덕분일까? 그에게는 좋은 일도 많았다. 2014년에는 대한민국유통대상에서 산업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2010년에는 중소기업 혁신회사로 선정되어 중소기업청장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한때 6개까지 운영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살았던 박용만 대표이사는 이제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매진 중이다.
“그동안 돈도 벌만큼 벌었어요. 그러면서 새로운 꿈도 생겼습니다. 이제는 우리 마트인들을 위해 뭔가 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던 마트 수도 줄였다. 남양주 동양할인마트만 운영하고 있다. 그 대신 그가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마트인들의 권익 보호다. 대형마트와 복합쇼핑몰의 등장으로 하루하루 막다른 길로 내몰리고 있는 마트인들의 애환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박용만 대표이사는 “복합쇼핑몰이 하나 생기면 그 지역 상권은 쑥대밭이 된다.”며 “자본과 인프라를 두루 갖춘 대기업과 공정한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중소상인을 위한 대책도 반드시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나라 경제를 살리는 초석이 됨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중소상인에게만 높게 책정돼 있어 대표적인 적폐로 꼽히는 카드수수료 문제도 그 연장선상에서 풀어야 하고, 200평 이상 1000평 이하 중소마트인들을 위한 정부 산하 단체도 반드시 출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낌없는 열정을 쏟아 붓고 있는 박용만 대표이사!

사단법인 한국마트협회 이사로, 지난 10월 출범한 경기동부지회 지회장으로서 두 팔 걷어붙이고 열심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소년소녀가장을 돌볼 수 있는 복지재단 설립도 꿈꾸고 있는 그는 그것 또한 그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사명으로 여긴다. /정리, 취재 노익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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