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의 트랙을 걷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돈다. 나도 아침에 보라매공원에서 걷기 운동을 할 때면 마지막으로 운동장을 한 바퀴 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앞사람을 따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곤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걸 보면 아마 우리의 생체 리듬과도 맞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가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혼자서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모두가 이상하게 바라보게 된다. 속으로는 미친놈!"하고 욕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러던 내가 하루는 친구와 만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과는 반대로 시계방향으로 돌게 되었다. 그러자 나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되었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과 같은 방향으로 갈 때에는 남의 뒷모습만 볼 수 있었는데, 남들과 마주보며 걷게 되니 각양각색의 다양한 인간들의 앞모습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미친놈!" 이라고 욕을 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너무나 규격화된 삶에 차차 염증을 느껴서인지 간혹 역행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사춘기에는 반항을 해보지 못하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만 하고 살아온 내가 사추기가 되면서 뒤늦게 반항 심리가 생겨난 것 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체육관에서 거꾸로 매달리는 기구에 자주 매달려 운동에 열중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거꾸로 바라볼 때가 있는데, 나름대로 꽤 재미가 있다. 나의 이러한 괴벽 증세는 의사회의 모임에서도 가끔 나타나 내 스스로를 곤란하게 만들곤 한다. 특히 최근에는 의약분업 문제로 인해 의사들의 단합을 주제로 토의가 벌어질 때가 많다. 그 때 나는 “우리는 의사와 반대편의 입장에 서서도 생각해 보아야한다. 정부, 약사, 환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고 하면서 단합에는 역행되는 말을 곧 잘 내뱉어 젊은 의사들로부터 성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의료계의 원로나 중진들이 모인 곳에서는 또 젊은 의사들을 대변하다가 원로들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 제 자리를 모르고, 주제 파악을 잘못하는 주책맞은 역행자의 길을 스스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역행이 새로운 만남과 새로운 사고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는 변명을 하면서 역행의 논리에 스스로 즐거움을 맛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것은 노인의 황소고집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사회든 역행하는 자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친구들은 홀로 역행하는 왕따 시킨다. 그러나 가끔은 역행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도 한다. 몰려다니기만 하면 새로운 것과 만나기가 쉽지 않다. 군중심리에 휩쓸려 다니기보다는 가만히 앉아 일의 전후를 돌아보는 것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함께 뛰지 않고 홀로 상념에 사로잡히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역행이다. 아무리 자기 소신이 있더라도 단체투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역행이다. 어떤 전문집 단의 전체 투표결과에 동의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것도 역행으로 비친다.
 대개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도시 외곽의 주거 타운에 살면서 사무실이 많은 도심으로 출근하게 된다. 그러나 도심에 살면서 외곽으로 출근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도 역행으로 보인다. 전자의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출퇴근 교통지옥에서 하루도 예외일 수 없이 고통을 당한다. 반면에 후자 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출퇴근길이 즐거울 수도 있다 비록 역행 같아 보이기는 하지만, 나는 직업상 후자를 택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나의 이 충고는 출퇴근의 역행을 결심하는 분에 게 커다란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따라가는 것이 순행으로 보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전염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소음이 있고, 시비가 있고, 경쟁이 있다. 그러나 역행을 해보라! 깨끗하고, 조용하고, 혼자서 일등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연을 만날 수 있다. 잠시 인간들과 다른 방향으로 걷는다고 진짜 역행은 아닐 것이다. 진짜 역행은 자연의 순리에 거슬리는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면 강을 막아 댐을 건설할 때 자연의 물길 흐름을 무시하거나, 정치가의 독선이 백성의 삶을 도외시하거나, 의료 개혁이 의료의 주체인 병과 환자와 의사를 무시하는 것은 분명히 자연의 섭리에 거슬리는 역행이다. 그러므로 나는 자연의 섭리에 거슬리거나 어긋나는 역행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인간들의 집단행동 에 가끔 역행하면서 자연의 편에 서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다른 인간들에게서는 빌려오거나 얻어올 에너지가 많지 않다. 그러나 자연에서 얻어올 수 있는 기나 에너지는 실로 무궁무진 하다. 자연에서, 우주에서 받은 에너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방출하고 죽을 때에 마지막으로 자연에 돌려주면 된다. 그래서 나는 인간에게 역행해도 자연에 순행하면 그 역행은 용서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천국에 가기를 원할 때 예수님은 오히려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셨다. 그러면서 하늘의 무한한 에너지를 맥 빠진 인간들에게 전하신 것이다. 이것도 인간에서 보면 예수님이 역행하신 것이지만, 자연에서 보면 진리의 길로 순행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