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렸을 때 시흥동은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시흥리였었다. 서면다리(시흥대교)건너 편은 서면이라 불렸다. 논밭이 많았던 농경동네로써 가호의 태반은 초가지붕이었고, 한옥 지붕은 99칸 집과 단군신전 외에 몇 집 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4차선 도로로 이용되어 그 자취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나, 그 당시 그 밑은 읍내, 탑동 등의 물줄기를 받아 한내(안양천)로 흘려 보내는 개울이었기에 고무신발 또는 엉성한 철사 어망으로 고기잡이를 즐기기도 했었다.

 3동의 기와건물이 계단 식이었던 시흥국민학교 뒤편은 가시철조망을 둘렀던 해발 낮은 야산이었고, 지금의 현대시장 입구 길목부터는 미군58부대(현 롯데캐슬)에서 관리했던 탄약운반 언덕길 이었다. 양철로 세워진 가 건물 앞에 장총 맨 보초병이 지켜섰던 탄약 보관소는 산중 곳곳마다에 있었다. 그 당시 이십 세 전후에 탄약을 운반했었다는 그 어르신의 회고에 따르면 탄약고는 석수역부터 보라매공원까지 이어져 있었단다. 오십 년 지기로 지냈던 그 어르신께서는 설 직전(2월2일)에 84세 일기를 마치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조선총독부고시 제1131호 소화 16(1941년 말)에 남겨진 문서에 따르면 시흥리동면 세대는 3,126에 인구는 16,541명이었다. 그랬던 시흥리가 서울시 영등포구로 편입된 후 인구가 급속히 불어났던 시점은 수재민들이 우르르 밀려들었던 1960년 대 중 후반부터였다. 이 급속한 인구 증가로 덩달아 유일한 교육현장이었던 시흥국민 학생들 수도 부쩍 늘어 오전 오후 반이 생겨났다.

 단군기원(檀紀)공용 연호에서 서기(西紀)공용 연호로 바뀐 시기는 군사정부가 들어선 1962년 1월1일부터이다. 단기4292(서기1959)년에 시흥국민학교에 입학하고 3학년 재학 중에 공용 연호가 바뀐 것이다. 그때부터 6년 과정을 마친 1965년 때까지 한 교과서 공부를 했던 동창들과 송년모임을 가졌다. 매년 행사로 3년 전에는 우리를 지도했던 선생님 세 분을 모시는 '스승의 밤'시간을 갖기도 했었다.

 우리는 학년이 오를 때마다 일부 명명은 반을 옮겨야 했다. 필자의 경우는 저학년 내내 3반이었다 4,5학년 때 2반 6학년 때 1반 교실의자에 앉아 국어 자연 체육 등의 공부를 배웠다. 그 당시 오돌오돌 추위를 녹여 준 난방기구는 유리창 바깥으로 뺀 연통 석탄난로 하나 뿐이었다. 매번 부삽으로 검은 덩이를 떠 넣고 훈훈한 열기를 유지해야 했었던 그 쇠 난로 위에는 크기와 모양새가 제각기 다른 양은 도시락들이 겹겹히 쌓아올려졌다. 그러면서 한 시간의 공부가 끝나자마자 밝은 해살이 얼음 땅을 푸는 운동장으로 달려나가 구슬치기, 종이딱지 따먹기, 무릎 싸움 등의 놀이를 즐겼다. 그때 풀뿌리 우정을 다졌던 동창들이 저마다 옛 추억을 안고 다시금 음식물을 나누게 된 것이다. 

 졸업 후 51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대에 밀려 동문회 체육대회나 척사대회 때도 초대를 받지 못하는 서러움을 안고 외곽에서 근근한 만남을 유지하는 풀뿌리 친구들은 그 한 달 뒤인 금년 1월 하순에 다시금 맞대면을 했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꼭 이주전에 아들을 장가 보낸 친구의 초대로 마련된 자리였다. 결혼식에 와 준 답례인 줄 알았던 면목은 실은 그 친구의 생일맞이 잔치였다. 성성한 백발, 그 백발을 검은 염색으로 덧칠한 동심의 친구들 모두는 혈색 좋게 건강했다. 음식을 나누며 공유된 초등시절 이야기만 터지면 귀를 모아 '그때 그랬었지' 한마디씩 내는 기세 역시도 보기가 든든했다. 그들의 목청에 힘이 실린 까닭은 생업기반을 여전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개중에는 일선현장에서 물러나 손자손녀들의 재롱에 흐르는 시간을 잊는 노인네도 끼어있다.

 초등생 동창들의 만남의 주된 이유는 옛 향수일 것이다. 그 성격은 딱딱한 경직이 아니라 가슴을 열게 하는 교제이다. 개중에 동창들과의 만남을 극도로 피하는 몇몇 친구들이 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사이가 틀어졌거나, 삼삼오오 술자리에서 의견 다툼을 벌여 관계를 영영 끊은 사례도 있을 수 있다. 동창 중 목사신분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필자와 개별로 만나 오다 어느 날 나의 권고로 교회 일로 도저히 올 수 없었던 일요일에 시간을 내어 총동문 운동회에 참석했다. 필자의 안내로 낯선 그를 대한 몇몇 동창들은 대뜸 욕지기부터 날렸다. 그 야유는 "왜 동창들에 전화를 걸어 땅을 사라 하느냐"이었다. 체면이 갈기갈기 찢기 그 친구는 "다시는 막부가내 동창들과의 만남은 없다."라는 선언을 내 귀에 남겼다. 이렇게 전후 사정 이야기를 일체 듣지 않고 속을 마구 뒤짚는 일방적 행태에서는 오히려 친구를 잃게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