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경 흠 (논설위원)
 해가 바뀌어 벌써 3월이다. 그런데 나는 2014년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2014년 이전의 한 곳에 머물고 있다. 왜 그럴까 생각을 키워보니까 과거의 나에 대한 부정적 심리상태에 지배당하거나 과거의 어떤 일에 컨트롤 당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는 죄인이 된 몸이라고 고백한다. 세월의 끈을 놓지 못한 채 그 당시의 시간에 갇혀 가끔 잠을 설친다. 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때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시간 이동이라도 해서 그 일을 바로 잡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솟아오를 때마다 간단하게 정갈한 음식을 차려 놓고 마음속으로 용서를 빈다.

 미안하게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것은 영화나 소설이나 시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이나 시들이 인기가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시간을 마음대로 넘나들며 불가사의하게 전개되는 내용에, 미지의 의미를 보탬으로써 인간의 현실 탈출에 대한 절차와 의지를 새롭게 제시하는 단초가 맹목적으로나마 적시되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나도 영화나 소설이나 시처럼 시간 이동을 하고 싶은 과거가 있다. 물론 떳떳치 못한 과거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양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마지막 이별만은 꼭 뵈어야 할 텐데 나의 정성과 시간차 때문에 한마디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채 지금은 마음의 억압을 받고 산다. 살면서 우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지 못했고 그것이 어느 날이 되어도 나의 고장 난 마음은 모든 인연의 시작과 끝에게 줄기차게 배신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환골탈태라는 말이 세상에 널리 쓰이나 보다.

 보편적으로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후회되는 과거로 돌아가 당시의 일을 미래(현재)의 느낌대로 바꾸지만 그로 인해 더 큰 위험이 닥쳐오고 결국 운명을 거스른 대과를 톡톡히 치른다는 내용이 주 줄거리다. 이는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후회되는 일에 젖어서 현재를 굳이 아파할까.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양심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뭔가 자기 기준으로 보편적 가치에 위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약적인 논리로 스스로를 다독이면 어느 정도 마음의 평정을 찾다가도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고 기분이 나빠진다. 삶에서 사실들이 꼬이고 엉킨 사례가 허다하다지만, 그런 경우 미친 척 세월 속으로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산 자의 규범이라고 성숙한 태도로 반추의 시동을 끈다. 그래도 무심결에 생각나는 과거의 숨김없는 사실이 모습을 드러낼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큰 양심과 작은 양심의 싸움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저러나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현재일 뿐이다. 즉 시간의 법칙은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알 수 없는 미래로 무작정 뚜벅뚜벅 걸어간다는 것이다. 누구나 숨 쉬고 있는 동안은 자유스럽지 못한 현실을 올라타고, 어떤 의미로도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은 낯선 일상적인 삶의 요인들을 껴안고 세상 속에서 트림을 하며 햇살 듬뿍 머금은 길을 가려고 한다.

 현재의 완벽한 나를 위해 내 지식으로는 한계가 많으므로 책과 타인을 통해 간접경험을 함으로써 만족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려고 한다. 바로 잡을 수 없는 과거를 바로 잡기 위해 오늘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이 바로 후회 없는 과거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즉 나 밖에 있는 타인이 아니라 나 속에 있는 또 다른 나가 올바른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려고 나를 꼬드길 때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후회로 오늘을 어둡게 살아갈 것인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희망찬 미래를 약속하는 밝은 오늘을 살아갈 것인가. 이렇게 대립적 관계의 삶에서는 병명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환자가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난감한 선택이라고 말할 때는 이미 패자가 되어 있는 것이니까 나는 승자가 되는 길을 택하기로 하였다. 여전히 잘못된 과거와 소통되지 않은 상태로 시간이 흘러가도 소통된 듯이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 요즈음, 이원적으로 분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위로의 손길에 의지하지 말자. 술에 의존하지 말자는 것이다.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며 나를 난도질 한다고 얼마나 마음이 푸근하겠는가. 오히려 더 아프겠지, 차라리 힘든 시간을 어떻게 넘길지 깊게 생각하자. 냉정성으로 허물어지는 마음을 다잡아 차갑게 단단해지는 얼음덩어리를 만들어,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충동을 식히고,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자.

 반드시 그렇게 되기 위하여 반성해야 할 과거는 털어내고 현재의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야 한다. 고통스럽더라도 참고 넘어야 할 중요한 자산이다. 이 과정을 넘지 못하면 주저앉을 수밖에 없고 넘으면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