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영
                                                                                          세영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원장

    종방까지 4회를 앞둔 현재 시청율 50%에 달하는 KBS TV 연속극 <왕가네 식구들>의 가장인 왕교감의 가훈이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역지사지(易地思之)”이다.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는 판에 이 왕가네 가족들의 가족 간 특히 고부간, 형제간, 부부간, 사돈 간, 부모간, 친구 간의 역지사지(易地思之)드라마는 세밀한 부분까지 “아! 우리가족의 이야기이구나!” 할 정도로 마음에 와 닫고 남편을 괴롭히든 입장에서 괴로움을 당하는 입장으로 바뀐 “나 미스 코리아에 나간 사람이야!”가 입에 붙은 맏딸 수박이의 경우와 남편의 바람에 괴로움을 당하든 둘째딸 호박이의 남편이 애인에게 쫓겨나 돌아와 전업 주부를 하며 호박이에게 역으로 당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 드라마는 통쾌하기 까지 하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어떤 개개인에게 주어진 각자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란다. 여러 가지 유색인, 흑인, 백인등 조상의 핏줄에 따라, 혹은 태어난 지역에 따라 어떤 개인의 특정한 생활 패튼이 형성되고 개성이라는 이름으로 고착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개성은 우리의 성장에 따라 삶의 환경의 변화, 교육과 문화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는 있다. 그러나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과 같이 생활 습관, 특히 잠버릇, 식습관 등은 잘 바뀌지 않는다.

   우리 부부도 식습관이나 잠버릇이 전혀 다르다.
  장인어른이 소아과 전문의이고 처남 둘도 의사인 집안에서 자란 아내는 항상 장인어른이 “위장을 쓰레기통으로 생각지 말라.” 는 교훈을 철저히 지킨다. 그래서 아내는 자기의 밥도 먹다가 자주 남기고 가족들이 먹다 남긴 음식은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그래서 몸도 날씬한 편이다. 반면에 부잣집에서 가난한 선비 집으로 어릴 때 시집온 나의 어머니는 항상 절약이 몸에 배어 우리들에게 “밥을 먹다 남기면 복 나간다. 싹싹 긁어 먹으라.”고 하시고 어떤 때는 식사 때 기다렸다가 아버지나 아이들이 먹고 남는 음식을 싹싹 긁어 잡수신다. 내가 서울서 하숙 생활을 오래하여 방학 때 한 번씩 내려가 잘 먹기만 하면 흐뭇해하신다. 그렇게 즐거워하시는 어머님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나는 더욱 잘 먹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뚱뚱하다.

    처가에서는 육회나 생선회는 먹지를 않는다. 장인어른의 철저한 위생관념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집의 교훈은 전혀 다르다.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한다. 편식이 제일 나쁜 버릇이다.” 그렇게 큰 나는 못 먹는 음식이 없다. 그러나 아내와 결혼 후에는 육회는 물론이고 생선회도 극히 제한을 받는다. 내가 생선회를 먹으려고 하면 아내가 “당신이 의사가 된 것이 참 이상하다. 그렇게 위생관념이 희박한 사람이 어떻게 의사가 되었지?” 하면 나는 “가끔은 약간의 비위생적인 음식을 먹어도 좋다. 우두를 접종해 Small Pox감염을 예방하는 것과 같이 우리 몸에 병을 유발하지 않는 정도라면 면역력을 증강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응수한다. 아내도 고급 뷔페 음식점에서는 내가 생선회를 먹는 것을 막지 못한다. 그러나 아내와 함께 바닷가 생선 횟집에서 생선회를 먹어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소한 습관의 차이가 부부사이에 가끔은 심각한 갈등을 유발한다.
    얼마 전의 일이다. 하루는 아내가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주겠다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일찍 집에 와 선물로 들어온 고급 홍삼 주를 한잔 건배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대 삼겹살이 자꾸 이빨 속에 끼인다, “남 앞에서 이빨을 쑤시지 말라”는 평소 아내의 엄명을 깜박 소홀하고 이쑤시개로 아내 앞에서 이빨을 쑤셨다. 이빨 청소 등 나의 생활 습관이 잘못된 것에 대한 아내의 설교가 또박 또박 시작되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이른 말을 당신에게 충고하겠느냐?”는 말로 시작된다. 최근에는 아내의 설교를 초인종이라 생각하고 아내가 하는 말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드리려고 노력하기에 별로 큰 마찰은 없었다.

    그러나 한잔 들어간 술이 화근인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모르고 너무나 자주 일방적으로 나의 오랜 잘못된 습관이나 잘못된 생리적 현상을 고쳐주려는 아내의 고군분투?가 나에게는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나도 한마디 했다. “여보! 우리 한 가지씩 서로 고칩시다. 나는 타인 앞에서 절대 이빨청소를 안 할 테니 당신도 남 앞에서 코를 풀어대는 것을 삼가하고 코푼 휴지를 자가용 속 여기저기에 버리지 말기로 합시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서운 집중 포격이 돌아왔다. 나의 말에 쉽게 동의하리라고 생각한 내가 미련하였든 것이다.

   “당신은 남 앞에서 코를 푸는 것은 실례가 안 된다 는 외국 에티켓 룰도 몰라요? 차를 몰다가 코가 나오면 어떻게 하란 말이오.?”하면서 심한 흥분상태로 마구 나를 몰아붙였다.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해도 옳게 반격도 한번 못한 남한이 생각나며 가만히 듣고만 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똑 같은 말과 행동을 돌려주었다. 내게 옳은 충고를 한다는 명목으로 경청해야 하는 나의 괴로움을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경험해야 아내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아 나도 반격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사태는 두 사람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를 주었고 다시 되돌려 반성하고 싶지도 않다. “야! 육이오 때의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야!”라는 왕가네 식구들의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러한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각자의 특성을 만드는 생활습관, 생체리듬의 차이는 갈라져 있는 남북의 문화의 차이처럼 함께 사는 부부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서로 상대편 입장에서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고 이해하기 전에는 심각한 마찰로 나타난다. 특히 자의식이 강하고 자랄 때 부모, 친지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우대를 받은 왕자와 공주과에 속하는 신혼부부들은 그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이혼 까지 하는 경우도 많다.

   출처는 기억되지 않지만 자주 인용되는 해와 달의 역지사지(易地思之) 이야기를 나도 인용한다. 우리 부부도 다시 읽어보고, 여야도 읽어보고, 남북의 지도자도 읽어보고 반성해야겠다.

<어느 날 해와 달이 만났습니다.
해가 달을 바라보며 "나뭇잎은 초록색이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달이 나뭇잎은 은빛 이라고 우겼습니다.
이번엔 달이 먼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잠만 잔다." 그러자 해가 달에게 잘못 알고 있다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야, 사람들은 언제나 바쁘게 움직인다."
해의 말에 달이 그렇지 않다고 하며 어느덧 다투었습니다.
그때 바람이 나타났습니다.
바람은 둘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 허허 웃으며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쓸데없는 다툼을 하고 있구나.
낮에는 해의 말대로 나뭇잎은 초록색이란다.
사람들도 바쁘게 움직이고, 땅도 시끄럽지.
그러나 달이 뜬 밤에는 모든 것이 변해 땅은 고요해지고, 사람들도 잠을 잔단다.
나뭇잎은 달빛을 받아 은빛이 되지.
늘 우린 이렇게 자기가 보는 것만을 진실이라고 우길 때가 많단다.">
 
   우리는 한없이 어리석어서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합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남에게 충고할 때도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남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상대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 가족의 평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마감되기 전에 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를 깨달아 백년해로(百年偕老)해야 할 배우자나 함께 도우며 살아야할 형제간이나 나와 한 핏줄인 부모 자식 간에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해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백인이 흑인이 되어, 건강하든 사람이 맹인 등 장애자가 되어, 또는 선진국 사람이 후진국에 기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경험하지 않더라도 상대의 어려움이나 아픔을 이해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그는 참으로 성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