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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시의회 김 기 영 전 의장특별대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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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11  23: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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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흥대로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금천구청역(당시 시흥역)과 가산동을 연결하는 벚꽃10리길 주성사업 예산을 서울시의회 김기영 전 의장이 유치해 개통했다. 사진은 벚꽃10리길 표지판 앞에서 웃고있는 김기영 전 의장

 
 - 안녕하십니까? 김기영 의원께서는 서울시의회 3대부터 5대, 3선 시의원과 부의장직, 그리고 의장직을 수행한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 이 자리는 금천구를 위한 시의원의 역할과 당시 의정활동, 그리고 시의회 의장직 등에 대한 경험을 듣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991년 30년 만에 지방자치가 부활할 때 지역주민의 강력한 권유로 늦게야 입후보했지만 당시 당선이 유력했던 여당후보를 제치고 당선했었다. 1995년 제4대 시의원 선거 때도 당시 여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물리치고 재선되어 서울시의회 부의장이 되었고 새정치국민회의 의원협의회 회장에 추대되었다.
  또한 1998년 제5대 시의원 선거 때 한나라당 후보보다 11,000표를 앞서는 절대적 지지로 당선되어 서울시의회 의장에 추대되었다.
  이처럼 3전3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후보가 약해서가 아니라 만나면 만날수록 인간미가 솟아나는 서민정치인이면서 함께 골목을 누비고 얼굴을 맞대고 호흡하는 인간적인 동질성에 구민이 저를 선택해 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구민여러분께 감사드린다.”

 - 재임당시 구민들의 평가를 어떠했나요,

  “캄캄한 권위주의 시대에 개인적으로는 사업을 하면서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기가 독립운동 하기보다 더 어려웠다. 특히 김대중 민주당 전 총재(제15대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다는 온갖 모함을 받았으며 아태지역 후원회 부회장으로 있을 때도 갖은 협박과 탄압을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이 송죽 같은 절개의 사나이로 인정되고 당내
에서는 상황이 불리할 때도 당을 위해 의연히 싸워나간 의리 있는 정치인이 되었다. 금천구 발전을 위해서는 소신을 갖고 서민과 구 발전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자 노력했다.
  구민들 사이에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한 사람’, 또 ‘신의가 있는 사람’, ‘마당발’, 지역고민 ‘해결사’, ‘부지런한 사나이’ 등으로 통했다.”

- 역대 서울시의원 중에서 화려한 경력에 많은 일을 한 분이라고 들었다. 그러나 초기 기대와 노력에 비해 금천구는 지금도 여전히 낙후된 모습이다. 구 발전을 위한 시의원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문제는 사업과 예산이다.
  의회에서 나는 날카로운 질의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질의만이 날카로운 사람이었다면 단순히 의회의 스타로만 남았을 것이다. 내가 속한 정당 사람들에게 속 시원한 질의를 통해 묵은 체증을 풀어주고 그로 인해 정당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일신에는 더 높은 명예가 있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 지역구의 발전 이바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역발전을 위해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책을 통해 내가 이루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중요시해야 할 부분이 예산이다. 예산에 대한 정확한 인식 없이는 추상적이고 공허한 공약과 외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많은 정치인들이 자기를 뽑아주기만 하면 기회를 주기만 하면 모든 것을 다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져 공허한 약속을 남발하고 실망을 시키곤 한다. 그것은 다 예산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없기 때문이다.
  구청장과 시의원이 함께 적극적이어야 한다.
  즉, 구청장 및 시의원이 머리 맞대고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청장은 사업을 계획하고 시의원은 사업비로 확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아시다시피 재정이 약한 금천구 같은 지자체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길은 서울시 혹은 정부로부터의 예산확보다.
 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집행부의 사업 타당성과 의견수렴을 바탕으로 전문성이 바탕이 된 최적의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의원은 예산확보가 가능한데 구청장이 구민을 위해 추진할 만한 사업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예산이 있다고 해도 확보하기가 어렵다.
  또 시의원은 서울시를 상대로 사업의 정당성에 대한 끊임없는 설득으로 소기의 목표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굳건한 추진력이 갖추어져 있어야한다. 다시 말해  적법한 명분을 가지고 예산을 가지고 올 수 있는 노하우와 지혜로운 방법론에 총체적인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구청장이나 시의원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사업도 예산도 미래도 없다.
 잘 찾아보면 전체 서울시를 위해 쓰는 큰 예산에 손을 대지 않고도 여기저기 조금씩 생기는 빈틈을 통해서도 컴퓨터의 디스크 조각모음을 하듯 지역구 발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을 얻어 낼 수 있다. 이렇게 찾아 낸 예산은 전체 예산안의 조화를 깨지 않고 서울시가 실행 해 나가려는 사업들의 발목을 잡지 않고도 지역구의 발전에 쓸 수 있다. 또 방치되고 있는 것과 같아서 이러한 예산을 찾아 쓴다고 다른 지역구에 누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열악한 우리 지역구의 발전을 꾀함으로서 전체적인 서울시의 생활환경이 개선되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다.

- 예산확보와 금천구 발전을 위한 사업의 상관관계를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구민들의 혈세로 추진되는 사업들인데 예산집행 부분도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요?

 “확보한 예산은 투명하게 집행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주민의 세금이 어떠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어떻게 집행되었는지를 수치상으로 투명하게 밝히는 부분인데...예산확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집행부분이다. 한 예로 예산을 확보하고 비효율적인 낭비성으로 흐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예산집행에 관한 계획이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과오로 훼손된 보도블록 한두 개만 교체하면 될 것을 해당 일대 전체를 바꿔버리는 경우가 있다. 예산낭비이고 비합리적인 것이다. 심각한 행정착오라고 보면 된다.
  시의원은 시의회에서 지역주민들의 불편사항을 처리하고 지역의 발전을 위해 일익을 담당한다.
  도의회와 마찬가지로 시의회는 지역민의 편의를 위한 일을 함과 동시에 시청의 감시하는 기구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시민들의 권리와 의무를 정하고 시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규범인 조례를 제정한다. 그리고 서울시의 예산안을 처리한다. 또한 시의회는 시의 행정사무 전반에 대한 감사 및 조사 기능도 한다. 아울러 시장 등이 시의 예산을 잘 사용했는지 살펴보는 결산 검사를 수행한다.
 그러므로 확보한 예산이 투명하게 집행되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10여년 의정활동을 투명하고 어떠한 유혹과 탄압에도 꿋꿋한 신뢰받는 의원으로 역할을 했었다.”

 - 1991년 이후 10여 년간 서울시의회 의장직을 거치면서 금천구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가장 보람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국수출공단 1호인 구로공단이 빈 공장 등으로 인해 폐허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안양천이 더 썩어가고 있었다. 공단과 안양천 살리기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운 것도 기억에 남는 일이다.
  또 초기 의정활동 중 가장 주력했던 분야는 지하철 노선계획과 도로설치 및 낙후된 도로의 개 .보수였다.
  3기 지하철 노선 중 독산동 통과구간을 주민의 편의를 위하여 건설하도록 서울시에 건의한 것이나, 가산동에 7호선 지하철이 통과 할 수 있도록 반영한 것이다.
 강남벨트를 있는 지하철 7호선이 우리 지역에 유치되지 않으면 자칫 우리 지역은 서울시에 편재되어 있지만 변두리로 전략해 버릴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지하철 7호선의 유치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당시 시흥동에서 시발해서 독산동을 경유하는 지하철 10호선(현 신안산선)의 조기착공을 서울시에 촉구하기도 하였다. 이경재 의원을 도와 나는 지하철 10호선의 독산동 경유와 조기착공의 중요성을 알려 내가 시의원이었을 당시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10미터도로 벚꽃길 조성사업, 은행나무-벽산아파트간 도로확장, 가리봉 5거리의 엄청난 교통체증 해결 그 외에도 각 도로의 관리 상태를 항상 점검해 도로개선 공사는 물론 횡단보도나 신호등과 같은 도로의 쓰임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는 것에도 힘썼다.
  그리고 시흥4거리의 교통난 해소 및 시흥대로변을 상업지구로 전환시켰다.
  이 밖에도 신설구인 금천구청 신청사 건축계획, 시립노인복지관 등 등 도시기반 시설확충을 위해 많이 노력을 했었다. 지자체 초기, 금천구 내 많은 사업들에 관여하며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사업을 위해 예산확보가 절실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조율자적 입장이었다. 어느 한곳의 이익만을 대변해서는 안 되고 이일이 전체를 위해 얼마나 소중한 가치가 있는지도 스스로 판단하고 또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했다. 당시 금천구에 절실하게 필요한 시설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서울시 예산을 많이 가져와서 일을 했다. 시장님께 “서울시에서 가장 가난한 곳에 예산을 좀 주세요.”라고 말하면 “금천구의 예산이 있는데 왜 서울시의 예산이 필요하냐?”면서 어떤 일에 쓰려고 하는지를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내가 계획하는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고 서울시의 예산을 따온 적이 많다. 금천구민을 위한 일이라면 금천구의 예산을 사용했지만 조금이라도 전체 서울시에도 유익할 수 있는 일이기에 충분히 설명하고 서울시 예산을 많이 따냈다.
 내가 서울시의회 부의장, 의장으로 있었을 때 서울시에서 예산을 가져 온 것이다.
 당시에는 그저 지역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주어진 일을 그저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런 활동들이 시간이 흐르며 금천구에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 금천구의 일이라면 내 일처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요,

 “평생을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봉사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아 왔다.
  나는 건전한 체육활동을 통해 육체의 건강을 단련하고 친목도모를 통해 건강한 정신을 가져야 밝고 명랑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체육활동과 관계된 많은 단체들의 활동에 참여했었다. 수영연합회, 조기축구연합회, 태권도협회, 탁구협회, 배드민턴협의회, 테니스협의회, 구원, 두리, 거송산악회 등에 고문을 맡아 직접 참여하여 운동하거나 후원을 하며 이들 단체들의 활동을 격려하곤 한다.
  또 금천과 서초에서의 로타리클럽 활동이라든지 자유총연맹, 민족통일협의회, 바르게살기협의회, 자연보호협의회, 청소년선도위원회, 공군보라매 등 사회계도 및 개선활동을 하거나 후원이 필요한 활동 등 사회의 올바른 변화를 꿈꾸며 크고 작은 일을 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그리고 나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달려가 함께하곤 했다.
  그 외에도 내가 내놓지 않고 찾는 곳은 지역신문이었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의정활동 중 중요한 사항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일이나 의정활동의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구민들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의정보고서만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지역 언론에서 보도를 하면 지역현안이나 그 현안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을 구민들께서 쉽고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지역현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직접 구민들께서 찾아보시는 것이 생업을 하면서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분에 대해 더욱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하고 해마다 지역신문을 통해 구민들께 인사하는 것을 빼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요즘 서울시 공기가 과거에 비해 많이 맑아졌습니다. 과거에 매연이 참 심했었는데 깨끗한 환경, 교통시스템의 선진화 등의 많은 업적을 남긴 것으로 압니다. 서울시의 여러 의정활동 중에 생각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1991~1995년까지 서울시의회 교통위원을 지냈다 .당시에 버스전용차로 확대를 강력히 주장했다.
 버스전용차로는 1986년 이후 급증하는 차량수요에 대비해 기존 도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방편으로 서울시가 대중교통 우선정책에 주안점을 두고 실시하기 시작한 것으로 왕산로와 한강로 구간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후반에 활성화 되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시간 단축에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또 당시에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개발만을 중요시했던 대도시 서울의 오염 정도가 매우 심각했다. 한강 문제를 비롯한 서울의 환경오염에 대해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당시 서울에서 제비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각종 자연정화사업으로 곳곳에서 꽃은 피는데, 환경오염으로 벌과 나비는 없었다. 그만큼 서울의 하늘을 다시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앞장섰다.
 일본의 도쿄가 환경 정화사업을 통해 도심환경을 깨끗하게 한 것을 예로 들며 서울도 더 늦기 전에 환경개선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배기가스를 철저히 단속하고 가로수를 많이 심었으며 녹지공간을 조성했다.
  1995년 4월 시정질의 때 ‘석유값보다 비싼 생수값’이라며 ‘수돗물 안 마시는 사정’을 공개했다.
  당시 시판되는 생수값이 20L당 4~5,000원으로 수입한 석유 값보다 비싸거나 비슷했다. 그래도 서울시민은 수돗물은 아예 허드렛물로나 쓰고 생돈내고 생수를 사먹고 있었다. 서민들의 생활을 팍팍하게 만들었다.
  서울시의 상수원 수질을 BOD 20PPM이하로 유지하겠다고 하지만 당시  수질검사 결과  BOD 35PPM으로 나왔었다.
 당시 ‘수돗물은 먹지 못할 물’이라고 주장하고 이후 상수원 보존대책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게 했다. 
 서울시 행정도 문제 삼았었다. ‘유령위원회가 판치는 서울시 각종위원회’라며 당시 서울시 산하 각종위원회가 59개나 되었다. 그런데 14년 동안 단 한 번도 안 열린 위원회가 있는가 하면 교통안전 대책위원회처럼 법규상 1년에 한 번씩 꼭 열어야하는 회의도 열지 않는 것이 수두룩했다. 허우대뿐인 유령위원회는 아예 없애 버리던지 본래의 취지대로 활성화 시키도록 했다.”
 
- 서울시 내에서도 지역의 불균등이 극심합니다.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낙후 금천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한 말씀하신다면,
 
  “금천구가 분구가 된 후 지자체를 형성한지 18여년이나 되었지만 지역의 불균등 해소를 위해 조치가 필요하다.
  서울시의회 의장을 맡으면서 제16대 시도의장 협의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전국의 지자체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의 시도의회가 서로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방안모색을 위해 힘을 합치는 것이 각 지자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
  금천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구청장 및 시의원이 다각적인 연구를 통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당시 반상균 구청장과 황호순, 구철회 시의원 등과 함께 단합된 모습으로 정말 열심히 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서 말 한 것처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산확보와 예산집행을 계획적이고 합리적인 실행해야 한다. 그리고 주민의견 수렴과 다양한 방법으로 환경개선을 반영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펴야할 것이다.
  또 금천구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산업공단이 있지만 여전히 타 자치구에 비해 인지도나 상징성, 개발 속도가 떨어지는 실정이다. 금천구의 낮은 제정자립도를 개선하고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대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시의 발전이 곧 나라의 발전이라며 서울시와 지자체의 구민 삶의 질을 높이는데 봉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합리적인 행정 처리를 위해서 직접 발로 뛰고 부지런히 현장을 다녀야 지역의 현실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금천구는 서울시 내에서 재정자립도가 약하다 보니 주민 편의시설 부재와 여러 제반의 부족으로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낮은 재정자립도를 극복하고 지역발전의 불균형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올바른 대안 책을 찾아 이를 토대로 최적의 입안과 추진을 통해 최상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금천구 발전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구민들 사이에 확실한 공감대가 형성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금천구민과 정치인들이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 끝으로 구민들에게 한 말씀,

 “구민여러분의 신뢰로 무려 11,000표나 앞서는 압승을 해 서울시의회 의장으로 추대되었고 3선 시의원으로 활동 할 수 있었습니다. 투데이뉴스저널 지면을 통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이 반드시 성취하시길 빌겠습니다. 행복하십시오. 감사합니다.

                         대담 : 김홍년 기자

 

 서울시의회 김기영 전 의장 약력


-명지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 사회교육학과 졸업(석사)
-LIFE University 명예박사
-서울시 3, 4, 5대 의원대변인 , 부의장, 의장
-전국 16개 시도의회 의장 협의회 회장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이사
-명지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아태 평화재단 후원회 부회장
-새마을운동중앙회 자문위원
-금천 조기 축구 등 30개 단체 고문

저서 - <이래도 될까? 지구촌 환경>
       <희망은 멈추지 않는다>
논문 - <한국청소년의 정치의식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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