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순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금천문인협회회원. 실버넷뉴스 기자.
저서 수필집 <바람소릴 들어 봐>
수상: 여성 중앙 독자수기 공모 최우수상.
서울시 여성 백일장 우수상

 언젠가 친구들 모임에서다.
 오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가방이 백화점에서 잘 팔린다는 뉴스가 나왔다. 
   “참 돈도 많아, 그 비싼 가방을 어떻게 들고 다니누”
   “무슨 소리, 돈 많은 사람들은 그 돈이 껌값이래.”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설마 했다. 왜냐하면, 보통 서민들은 꿈도 꿔보지 못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국산브랜드만 해도, 십여만 원이면 예쁘고 견고한 백을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그 비싼 외국 가방을 들어야 하는가.
 
   지난 9월 10일, 전직 대통령 전씨 일가가 16년 만에 내기로 한 추징금은 천육백 억대다. 나는 억억대는 그 숫자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제야 그들에게는 오백만 원이라는 돈이 껌값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비자금을 챙긴 기업 총수나 뒷돈을 받은 비리 공무원들의 얼굴을 TV 화면에서 종종 보았다. 그러나 백성들의 삶을 보살펴야 할 나라님이 개인의 안위를 위해 그 많은 돈을 챙겼다니, 참으로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은 우리나라 대대손손 집안을 지킨 명문가들의 이야기다. 책을 펴낸 작가 조용헌선생은 불교 민속학을 전공한 불교학 박사다. 00일보 일간지에 칼럼을 쓰고 있는 그가 집필한 <명문가>는 예로부터 이 나라를 지킨 집안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당 이회영(1867-1932) 집안은 조선 시대 서울을 대표하는 명문가였단다. 당시 재산도 삼만 석이나 되는 부잣집인데 구한말 나라가 망하자 재산을 모두 정리하여 만주로 갔다. 그곳에서 독립군을 양성하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삼한갑족(三韓甲族)다운 장렬한 최후를 마친 집안이란다. 그뿐이 아니라 안동의 고성이씨의 종택 임청각(臨淸閣)도 영남을 대표하는 양반집이었다. 초대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이 바로 임청각의 종손인데, 석주 이래로 그 손자까지 독립운동을 하는 바람에 그 후손들은 고아원에서 커야 했단다. 
 
  문화재 보존으로 독립운동을 한 간송 집안, 독립운동 민주투사 그리고 교육투자, 나라를 지키고 세운 훌륭한 집안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그 유명한 경주 최 부자 집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집안 지침 여섯 가지에서 세 가지 항목만 살펴보아도 그 많은 세월을 어떻게 존경받는 집안으로 지켜 왔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며, 만석이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며느리가 들어오면 삼년을 무명옷을 입혀라 등,
 삼백 년 가문을 지킨 겸손과 지혜가 담겨있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들의 순직과 희생이 있었는가. 요즘 일어나는 사건을 보며 분통이란 말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나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에 대해서는 공소시효(公訴時效) 라는 제도를 없애 버렸으면 한다. 직권남용으로 비자금을 횡령했거나, 공금을 갈취 했거나, 집안 재산을 형제들 몰래 혼자 취득했거나 하는 경우, 그 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살아있는 한, 평생을 통해 반성하며 갚도록 법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나도 한 때는 억울한 일을 당해 잠을 이루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서민들이 쉽게 사서 먹는 껌값 오백 원, 요즘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며, 이 좋은 가을에 마음자리가 편치 않은 씁쓸한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