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회 ‘성천상’을 수상한 전진상의원 배현정 원장이 수상소감을 밝히며 환히 웃고 있다.

‘38년 의료봉사’....
중외학술복지재단, “한국에서 소외 이웃위한 진료소 운영 큰 업적”

 ‘성천상’ 상금 1억 전액 기부
 시흥동서  38년 무료 진료, “간호사로 시작… 의사 없어 내가 의대 공부”

      시흥5동 소재 전진상의원(www.jeonjin sang.or.kr  전화 802-9311) 배현정 원장(67세, 본명: 마리 헬렌 브라쇠르)이 8월28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제1회 성천상 시상식 무대 위에 섰다.
  그리고 그녀는 이종호 JW중외그룹 중외학술복지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상금 1억원과 상패를 수여받는 영예를 안았다.
  이 자리에 이성낙 가천의대 명예총장, 이용각 가톨릭의대 명예교수,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 프랑수아 봉땅 주한 벨기에 대사 부부, 김윤수 대한병원협회 회장,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등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성천상은 JW중외그룹 창업자인 故 성천 이기석 사장이 평생 실천한 생명존중의 정신을 기리고 음지에서 헌신적인 의료봉사 활동을 통해 사회적인 귀감이 되는 참 의료인을 발굴해  시상한다.
  JW중외그룹의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제정하여 올해 첫 수상자를 냈다. 
   이날 시상식에서 이종호 회장은 배현정 전진상의원 원장에게 상금 1억원과 상패를 수여했다.
   이성낙 성천상위원회 위원장은 “고국인 벨기에를 떠나 한국에서 38년 동안 소외된 이웃을 위해 진료소를 운영하면서 참 인술을 펼친 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다.
  벨기에 출신으로 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1972년 26살에 처음 한국을 찾은 파란 눈의 여간호사 마리 헬렌 브뢰세르는 빈곤한 삶에 지쳐 몸이 아파도 치료조차 받을 여건이 되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평신도단체인 국제가톨릭형제회(AFI) 회원으로 한국에 와 2년동안 한국어를 공부하고 1975년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추천을 받아 시흥동 판자촌에 무료 진료소인 `전진상(全眞常) 가정복지센터`를 열었다. 
  그녀에게는 `배현정`이라는 새로운 이름도 생겼다. 한국에 온  첫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한국 이름 `‘현정’에 자신의 성 ‘브뢰세르’와 비슷한 성인 `‘배’를 붙였다.  환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999년에는 이 이름으로 서울시 명예시민이 됐다.
  그리고 한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간호사였던 배 원장은 의사가 됐다.  전진상센터를 연지 6년 후  한계를 느낀 그는 본인이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1981년 중앙대 의과대학에 편입한 배 원장은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본격적으로 의료봉사를 시작했고 월평균 1500명의 환자를 보살펴온 `파란 눈의 주치의` 배 원장은 38년간 총 39만명의 저소득층에게 인술을 베풀고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해 왔다.
  전진상은 온전(全)한 자아봉헌, 참(眞)다운 사랑, 끊임없는(常) 기쁨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진료소의 이름처럼 그녀는 38년 동안 한결같이 한 자리에서 환자들을 돌봤다. 원장은 “결핵환자 너무 많았고 애기들은 예방접종도 못 맞고 있었다.  자동차도 없었으니까 119대신 리어카 이용하기도 했다”며 지난 38년을 회상했다.
  5년 전부터는 임종을 앞둔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센터도 연 배 원장은 지금도 매주 한번 씩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직접 무료 왕진을 하고 있다.
  그녀는 '시흥동 슈바이처'라고 불리며 구민들 속에 ‘아름다운 의사’로 각인됐다.
  이런 그녀의 행보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그녀는 공로를 인정받아 그동안 많은 상을 탔다.
  그러나 이번 수상은 한국의 슈바이처를 발굴하는 제1회 성천상 수상자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또 그녀가 외국인으로서 지난 38년간 업적을 인정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JW중외그룹 창립자 고 성천 이기석 사장의 생명존중사상을 기리고 헌신적 의료인 발굴을 목적으로 제정된 성천상 정신과 많이 닮았기 때문에 그녀의 수상은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배 원장은 "매우 기쁩니다. 더구나 외국인으로서 제1회 성천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이성낙 성천상위원회 위원장(가천의대 명예총장)은 "배 원장이 자신의 평생을 바쳐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소외된 이웃을 위해 노력해온 점이 고 이기석 사장의 '선공후사'의 정신과 부합된다."고 했다.
  한편 고 이기석 사장은 1945년 조선중외제약소(현 JW중외제약)를 창업한 뒤 "국민 건강에 필요한 의약품이라면 이윤이 박하더라도 생산해야 한다"는 선공후사의 정신을 바탕으로 1959년 당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수액제를 국산화하는 등 국내 치료의약품 산업의 초석을 다지는 데 평생을 바친 제약인이다.
  배현정 원장은 처음에 호스피스완화의료활동을 시작할 때는 의원이 작다보니까 마약성진통제 구입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또 수입이 너무 부족해서 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의원과 복지관 살림이 넉넉하지 않으니까 힘들 때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질병과 가난의 고통을 나누겠다는 신념으로 항상 의원과 복지관 식구들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되고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배 원장과 함께 길을 걸어 온 동료 그리고 온정의 의술을 받은 환자들은 그녀를 가리켜 '파란 눈의 천사'라고 부른다.
  배 원장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46년 프랑스어를 쓰는 벨기에 남부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학교 무렵 자연스레 평생 봉사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수녀가 되려다 평신도로 사회에서 봉사를 하자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어디서든 봉사를 할 수 있는 간호학을 전공했다. 남자친구도 있었고, 부모님도 결혼을 하기를 바랐는데 뿌리쳤다고 한다.
　한국어도 제대로 몰랐던 26살의 그녀는 남미나 아프리카 국가로 가려 했다가 다른 한국 회원들의 부탁을 받고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국제가톨릭형제회(AFI)를 통해 72년 한국땅을 밟았고 소록도로 가려고 고민하던 중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으로 시흥동으로 왔다.
  고 김수환 추기경을 할아버지라 불렸다. 김 추기경이 “요즘 시골에서 도시로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데 대부분 변두리에 판잣집 하나 짓고 산다. 이들과 함께 살며 봉사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에 그녀는 “시흥동으로 왔다”고 한다.
  김 추기경의 조언에 74년 유송자 사회복지사, 최소희 약사, 그리고 배현정 원장 이렇게 세 명이 의기투합했다. 78년에는 김영자 간호사가 필리핀에서 결핵을 연구하고 돌아와 합류했다. 지금까지 함께 살며 전진상 의원을 운영하는 동료다. ‘평생 동지’인 셈이다. 네 사람의 만남은 사회복지사업과 의료봉사의 종합 시스템 그 자체였다고 한다.
  1975년에 세운 ‘전진상(全眞常) 의원’은 지하 1층·지상 3층의 빨간 벽돌 건물이다. 집들이 몰려 있는 골목길 사이에 위치해 있어 얼핏 보면 병원이라기보다 가정집 같다. 지하 1층엔 지역아동센터가 있어 환자 자녀나 생활이 어려운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 방과 후 공부를 할 수 있다. 2~3층엔 진료실과 말기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진상 의원에는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대형 병원 의사 50여 명이 매달 봉사를 하러 온다. 환자들은 일반 병원과 달리 의사를 만나기전에 사회복지과에 들러 등록을 해야 한다. 이때 가족관계·경제사정 등에 대한 상담이 이뤄진다. 배 원장이 1차 진료를 하면 비뇨기과, 정형외과 등 전문의들이 2차 진료를 하는 식이다. 또 병원에 오기 힘든 노인들에게 매주 목요일 순번을 정해 배 원장이 직접 왕진을 간다. 직장이 있는 환자들을 위해선 매주 3차례 야간진료까지 한다. 밤 10~11시를 넘기기 일쑤다. 왕진비는 받지 않으며 저소득층에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의료분야 외 50여 명의 봉사자가 의원 안에서 호스피스 환자와 지역주민을 위한 음악치료·색채치료 등을 제공했다. 이런 전진상 의원의 종합적인 서비스를 두고 연구가 이뤄지고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꾸준함이었다.
  배 원장은 40여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실제 이 일대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배현정 원장은 "제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눌수록 더욱 부유해 지고 기쁜 것 같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일. 그것이 제 운명이고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어려운 이웃들이 많다”며 "눈감는 그날까지 '무료의술' 놓지 않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녀는 “저소득층 환자들이 전진상의원을 찾아 치료비 걱정 없이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후원을 부탁드린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현재 전진상의원은 정부의 지원 없이 자체 수익과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년 600여 명의 정기후원자로부터 후원금을 받고 있지만 연간 1억원 내외에 불과해 저소득층 환자들에게 무료진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상황이다.
  파란 눈의 시흥동 슈바이처 배 원장은 “전진상의원은 정부 지원 없이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지금 운영난에 처해있는 저희 호스피스 의료센터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에… 상금 1억원을 제가 일하는 병원에 기부할 것”이라고 밝혀 성천상 수상으로 받은 1억 원의 상금 역시 저소득층 진료에 쓰일 예정이다.
  배현정 원장은 "힘이 있는 한 계속 할 것이다. 특히 호스피스 분야에서 활동을 많이 하려고한다.. 한국에서 그리고 제 인생 끝까지"라고 했다.
   언제나 환자 곁에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눠온 배현정 원장에게서 이 시대 의료인들의 진정한 사명감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자신의 삶을 바친 40여년의 의료봉사활동. 이제는 잠시 휴식을 취해 봄직도 하지만 배 원장의 의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구민들은 “그의 헌신적인 봉사와 구민사랑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입을 모은다.
                                                      김홍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