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뉴스 진홍기자] 연인의 폭력을 경찰에 신고한 여성이 지구대에서 나온 지 10분 만에 동거하던 남성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금천구에서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자신을 경찰에서 조사를 받게 신고한 데 화가 나 범행했다. 

 경찰은 해당 남성을 보복살인 혐의로 5월27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도주 우려 있다”며 특가법상 보복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김 씨는 지난 21일 이별 통보를 받은 뒤 금천구에 있는 피해자 A(47)씨 집 근처 PC방 등을 전전했다. 26일 오전 4시께 인근 PC방에 만난 B씨(33)와 A씨는 오전 5시 넘어 A씨 집으로 가는 길에 말다툼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A 씨는 오전 5시37분 김 씨가 TV를 부수고 팔을 잡아당기는 등 폭행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김씨를 임의동행해 오전 6시11분까지 조사했다. A씨가 피해자 조사를 마친 시각은 오전 7시10분이었다. 경찰 조사를 받고 나온 B씨는 금천구 시흥동의 한 PC방 건물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A씨의 차량을 발견한 뒤 300∼400m 떨어진 A씨 집에서 흉기를 챙겨 나온  B씨는 주차된 A씨 차량 뒤에 숨어 기다리다가 오전 7시17분께 A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하고 달아났다. 

 시민 2명이 김씨와 A씨를 목격했으나 범행을 인지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목격자에게 "여자친구가 다쳐 병원에 데려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가 '여자친구가 임산부냐'고 묻자 "임신한 게 맞다. 112 신고하지 마라. 차로 가는 게 더 빠르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B씨는 A씨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옮기려 했으나 병원을 찾던 중 A씨가 숨을 쉬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애초 시흥사거리 인근 병원에 가려다가 경기 고양시 대형병원 쪽으로 차를 돌렸고, 오전 9시께 A씨 호흡이 멈춘 사실을 확인한 뒤 길을 잘 아는 파주로 차를 몰았다고 말했다.

  범행 직후 달아난 B씨는 약 8시간 후인 오후 3시25분께 경기 파주시 한 공터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차량 뒷좌석에서 A씨 시신이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A 씨의 폭행 피해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뒤 김씨를 임의동행해 조사를 했지만 단순한 연인 간 다툼으로 판단해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범죄에 적용하는 접근금지 등 피해자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주소나 연락처 같은 개인정보를 알고 있는 친밀한 관계에서 피해자가 안전한 공간을 찾기 쉽지 않은 만큼 보다 적극적인 분리 조치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스토킹, 가정폭력과 달리 교제폭력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보호 장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아 보복범죄에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여성 살인이나 미수 사건은 언론에 알려진 것만 봐도 1.17일에 1명꼴<도표 참조>이다. 작년 한해 최소 86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의 경찰 조처에 대한 적절성이 거론되자 금천경찰서(서장 최진태)는 다음날 27일 오후 관련하여 살인사건 브리핑을 열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 A씨가 경찰 상담 당시 피의자 B씨의 처벌과 본인에 대해 귀가보호 조치를 원하지 않아 분리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경찰은 “A씨가 폭행에 관해 신고했다”면서 이를 경미하다고 판단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교제 폭력 위험도를 높지 않은 쪽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위험도 점수는 확인해 주지 않아 의혹을 더했다.

  경찰은 B씨는 자기 주소지인 파주로 가는 택시를 잡아주겠다는 경찰관 제안에 "알아서 가겠다"고 했다. 그는 오전 6시26분 경찰의 확인 전화에도 "파주에 가고 있다"고 답했다. 파주로 가던 도중에 택시에서 내려 피해자를 찾아간 것인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했다.  

  경찰은 폭력 신고를 접수한 뒤 A씨가 “연인관계이지만 결혼할 생각이 없다. 생활비도 같이 쓰지는 않으며, 한번 집을 나가면 오래 나갔다가 가끔씩 들어온다”는 진술에 근거해 사실혼 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을 적용해 분리조치를 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B씨 진술상 두 사람은 피해자 A씨의 집에서 A씨의 어머니와 함께 일주일에 1~2일은 함께 지내는 관계였다. B씨는 일정한 직업과 소득이 없이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브리핑에서는 두 사람이 동거하는 사실혼 관계가 아니냐는 질문이 쏟아졌으나, 경찰 쪽은 “단순한 연인관계로 판단했다”고 선을 그었다.

    B씨는 28일 오후 2시께 영장심사를 위해 경찰서를 나서면서 "정말 죄송하다. 평생 속죄하고 살겠다"고 말했다. 범행을 사전에 계획했냐는 질문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답했다.

  5월30일 서울남부지법 이소진 판사는 29일 오후 B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한 뒤 "도주가 우려된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B씨 휴대전화 포렌식과 피해자 사체 부검 결과를 살핀 뒤 구속기간 만료 이틀 전인 6월2일 사건을 검찰에 넘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