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컬렉션’. 

  듣기만 해도 엄청난 위력의 브랜드 파워를 가지고 있다. ‘이건희 전시관’은 이건희 컬렉션만 오는 것이 아니라 ‘삼성’을 유치한다는 상징성도 지닌다. 

 故 이건희(1942∼2020) 삼성전자 회장이 수집했던 소장품 2만3000여점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 대구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이중섭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 전국 국가기관에 기증하겠다고 이건희 회장의 유가족이 지난달 28일 밝혔다. ‘이건희 컬렉션’이 ‘세기의 기증’이라 불리고 있다.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의무”라는 이건희 회장의 생전 의지에 따른 것이다.

  이 같은 대규모 기증은 사상 처음 있는 것으로, 국내 문화자산 보호는 물론 미술사 연구와 국민 문화향유권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은 국보와 보물을 포함한 기증품들은 양적이나 질적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기증내용을 살펴보면 삼성가는 각 기관에 어울리는 소장품을 신중히 선별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와 작품이 지역에 깃든 사연까지 고려해 기증 작품들을 살뜰히 챙겨 보내줬다고 한다. 

  2만1,000여 점이 기증된 중앙박물관은 그 양이 너무 많아 받는 데만 한 달이 걸린다고 한다. 1,500점가량을 받은 현대미술관은 ‘이건희 컬렉션’ 덕에 드디어 소장 미술품 1만 점 시대를 열게 됐다.

  또 이번 기증으로 모네, 고갱, 달리, 샤갈, 피카소, 미로 등 해외 거장들의 작품을 처음 소장하게 되는 영광도 안았다. 지난 주말 현대미술관은 앞으로의 전시 일정을 발표하면서 기증품들을 살펴보니 이중섭의 ‘흰소’, 이상범의 ‘무릉도원도’ 등 희귀작들이 포함돼 있었다.

  대구 화가 이인성, 경북 울진이 고향인 유영국의 작품은 대구미술관으로, 전남 신안 출신인 김환기의 작품은 전남도립미술관에 배정하는 등 지역미술관엔 해당 지역에 연고가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냈다. 박수근미술관을 포함해 서귀포 이중섭미술관 등 작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엔 해당 작가의 작품을 선별했다. 혜택을 받은 곳들은 하루아침에 미술관의 품격이 달라졌다. 해당기관의 컬렉션 중 부족한 부분과 꼭 필요한 작품을 골라 기증을 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놀라운 움직임이 최근 일어나고 있다.

 박수근미술관에 따르면 ‘이건희컬렉션’이 강원도 양구군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양구읍 박수근로에 위치한 박수근미술관이 이건희 회장이 수집했던 박수근의 작품 18점을 기증받아 특별전 ‘한가한 봄날, 고향으로 돌아온 아기 업은 소녀’를 시작했다. 

  를 비롯해 유화 4점과 드로잉 14점을 전시하고 있다. 

 인구 2만명 남짓인 양구군에 전국 각지의 관람객이 몰려들고 있다. 토요일인 8일에는 262명이 다녀갔다. 기존 하루 평균 30~40명이었던 것과 비교해 6배가 넘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 부분이다.

 이건희 컬렉션만을 위한 미술관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이건희미술관’을 넘어 ‘국립근대미술관’ 논의로 확장됐다.

 어쩌다가 이건희컬렉션이 이러한 ‘이건희미술관’ 유치라는 행동으로 나왔을까?

 지난달 28일 이건희 회장의 유가족이 기증을 밝히자 다음 날 29일 문재인 대통령이 “별도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하자, 특별관 설치가 기정사실인 양 어디에 지어지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미술품을 기증한 정신을 잘 살려서 국민이 좋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자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미술관 유치전이 불이 붙었다. 정치인과 이해관계자들이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유치의 당위성을 내 세우고 있다.

  기증된 컬렉션 중 일부를 중심으로 국립미술관·박물관에 있는 근대미술품만을 모아 국립근대미술관을 세우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문대통령의 지시가 있자 다음 날 30일 미술계 관계자 100여명이 이건희 컬렉션 중 근대미술품을 바탕으로 ‘국립근대미술관’을 설립해야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건희컬렉션’의 관심이 ‘이건희 미술관’으로 불이 붙었다. 

 갑자기 너도 나도 ‘이건희미술관’의 유치를 내세우며 과열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지자체들도 내 땅에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실현하고자 전국 지자체 간 사활 건 쟁탈전이 펼쳐지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미술 소장품을 전시할 공간인 이른바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에 전국 시도가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심지어 순회 전시관을 나눠 갖자는 주장도 나올 정도로 뜨거운 잇슈가 되고 있다.

 소장가의 철학을 담은 컬렉션을 유치하려는 것은 관광은 물론 지자체의 자긍심에도 투자 가치를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대규모 기증은 사상 처음인 만큼 국내 문화 자산 보호는 물론 미술사 연구와 국민 문화 향유권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결국 전국 곳곳에서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두고 지역 연고전(緣故戰)이 점입가경이다. 

 지자체들은 저마다 이 회장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미술관 유치에 뛰어들고 있다.

  가장 먼저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2일 SNS를 통해 국제관광도시로 지정돼 있고 북항에 세계적인 미술관 유치 계획을 어필하면서 ‘이건희 미술관, 부산에 오면 빛나는 명소가 됩니다’는 글을 올려 유치를 희망했다.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 지자체장 및 국회의원이 참전한 지역만 벌써 10곳. 9일에는 용인시가 ‘인연론(論)’을 꺼내들었다. “(고인의 선친) 이병철 회장이 호암미술관을 용인에 건립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호암으로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겨 미술관 유치에 힘쓸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부산 광주 경남 전남 수원 밀양 여수 창원 등지에선 지자체장이나 지역 의원들이 앞다퉈 유치 경쟁에 뛰어들며 지역민들에게 괜한 기대를 부추기고 있다.

  ‘이건희 전시관’이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를 비롯해 지역 경제 활성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만큼, 그 향방에 대한 귀추가 주목된다. 저마다의 인연을 강조하며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나섰지만, 어디에다 전시할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기증한 미술품의 목록과 가치 등을 분류해 체계적인 관리가 우선인 것 같다"는 의견도 있다. 

 모두의 미술품이라며 국가기관에 기증한 유족들의 참뜻과는 거리가 먼 움직임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작 ‘문화’는 빠져있다는 지적이다. 기증이라는 문화 자산 창달에 대한 존중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제사상에 들이미는 남루한 숟가락만 여럿 보일 뿐.

이건희 회장이 평생 모은 미술품 ‘이건희 컬렉션’ 중 유족 측이 국가에 기증한 2만여점의 기증품은 고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시기와 장르별 폭이 넓다. 이것을 하나의 공간에서 어떻게 아우를지, 뮤지올로지(museology)에 기반한 검토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고려한다면 지역 유치전은 후순위가 아닐까 싶다. 

 엉뚱한 이유로 사회적 비용의 오용은 오롯이 국민의 몫으로 남는다. 훗날 지역이기주의와 표심(票心) 안배의 결과로 ‘이건희미술관’이 결정돼 향후 초라한 운영으로 이어진다면 이 또한 국가적 손실이다. 이것이 고인의 유지(遺旨)일 리가 없다.

 정작 정부나 삼성 측은 미술관 건립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않아 실현될 수 있을지 관심이다.

 지역 미술계 인사는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아 자칫 경쟁만 과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낸다.

 삼성 가문이 돈이 없어서 새 미술관을 짓지 않았겠는가. 리움미술관에 모아 전시했어도 충분했을 일이다. 

  또 이미 중앙박물관과 현대미술관, 지방의 공공미술관에 나눠준 것을 다시 빼앗아 한데 모으는 게 가능한 일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한다.

  일부 미술계 인사들은 이참에 새 미술관 하나 짓자며 시는 땅을 내놓고, 정부는 돈을 내놓으라는 식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주장들이라는 시각도 있다. 좋게 보이지 않는다.

  크게 결단한 유족의 뜻을 기리고,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시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다.

  세기의 기증이 이문 남는 토목사업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이건희 미술관’ 설립을 두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내부 논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5월7일 ‘이건희컬렉션’ 세부 공개 기자간담회에서 “(이건희 컬렉션 특별관 설치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본부 차원에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박종달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운영단장도 이날 “현재 미술관이 아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건희 미술관이 될지 근대미술관이 될지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했다.  

  삼성 측은 “기증받은 미술품을 잘 관리하고 보전하는 것이 이 회장의 뜻”이라며 “유치 경쟁은 지역 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만큼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오랜만의 문화계 경사가 저마다의 잇속만 챙기려는 욕심에 치여 오점이 생기지 않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