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악산 암벽 '마애미륵불좌상'이란 불상이 새겨져 있다. 왜 인적이 드문 작은 바위에 새겨져 있고 조각가는 어떤 심정으로 불상을 새겼을까?

[금천뉴스=한용철 기자] 중국의 사안이라는 사대부는 재능이 출중했음에도 관직에 나서기를 거부하며 왕희지 등 당대 문인들과 동산에서 유유자적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주변의 권고에 못 이겨 관직에 오르기도 했지만 “내 일이 아니다”며 곧 그만두었다.

하지만 전진왕 부견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동진에 쳐들어오자 동산에서 나와 재상에 올라 나라의 힘을 결집하고 전진을 물리쳤다고 전해진다. 사안은 인재론과 관련해 ‘지란옥수(芝蘭玉樹)’를 언급했다. 지란은 ‘지초(芝草)와 난초(蘭草)’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옥수는 ‘아름다운 나무’라는 뜻이다. 지혜와 명철이 이를데 없고, 난초같이 고귀하고 품위 있으며, 옥구슬처럼 맑고 수려한 인물들을 등용해야 할 시기가 왔다.

며칠 전 관악산(낙성대 코스)을 오르다 등산로에서 조금 벗어난 암벽에 '마애미륵불좌상'이란 불상을 보았다. 1630년 (인조 8년)에 조각된 불상은 왜 인적이 드문 작은 바위에 새겨져 있고 조각가는 어떤 심정으로 불상을 새겼을까? 기자는 인조 반정이후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적인 불심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실리의 중립외교 정책을 펼친 광해군의 전략과 '친명 배금 정책'을 주장한 서인들과의 대립으로 인조반정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4.15총선이 끝나고 코로나19의 대란으로 지란옥수의 인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역사의 현실앞에서 지나온 우리의 역사는 정쟁으로 피로 얼룩진 과거의 역사를 품고 있다.

인조반정으로 서인으로 강등된 광해군은 선조의 뒤를 이어 내정과 외교에서 비범한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었다. 내정 면에서 왜란으로 인해 파괴된 사고(史庫) 정비, 대동법 시행, 호패법의 실시 등 많은 치적(治績)을 남겼으며, 외교 면에서도 만주에서 크게 성장한 후금(後金)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국제적인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임해군과 유일한 적통인 영창대군을 살해했으며, 인목대비의 호를 삭탈하고 경운궁에 유폐했다. 이러한 행위는 패륜으로 여겨졌고, 명을 배반하고 후금과 평화관계를 유지한 것도 명분과 의리를 중시하던 당시의 사림들에게는 큰 불만이었다. 권력을 잃었던 서인세력들이 불만을 이용하여 정변을 계획했던 것이다.

인조반정에 성공한 서인들은 북인으로서 광해군 말기까지 정치에 관여했던 수십 명이 처형하고, 200여 명을 유배했다. 반정에 참여한 인물들은 정사공신으로 책봉돼 정권을 장악했다. 서인은, 광해군 정권 몰락의 원인을 정책의 패륜성에서도 찾았지만, 보다 주요한 원인은 당시 정치세력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던 서인·남인 등 다른 붕당의 존재와 반대의견을 무시함으로써 야기된 불만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서인정권은 북인을 도태시키면서도, 남인 이원익을 영의정으로 임명하는 등 반대당의 존재와 비판을 인정하는 입장을 취했다. 서인들은 광해군의 폐륜 행위를 명분삼아 반정을 일으켰으나 명나라의 국운이 기울고 후금(청)이 강성해지는 대외 정세를 파악하지 못해 결국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50만 명의 부녀자가 청으로 끌려간 쓰라린 아픔과 '삼전도'라는 조선 역사상 가장 큰 패배와 치욕을 당한다. 국제 정세를 파악하지 못하는 파벌 싸움의 어리석음이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구한말은 어떠한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한 일본과 미국과의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미국으로부터 승인받게 됐지만, 정세를 파악치 못하고 청과 러시아가 패권국가라는 착오로 경술국치(한일 병합 조약)라는 치욕적인 조약으로 식민 통치가 시작된 것이 아니던가?

결국 통치자와 집권당의 이념과 단순한 민족사관이 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게 했던 결과로, 나라까지 잃게 만든 것이 아닌가? 오늘날 국제 정세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으로 인한 무역전쟁, '친중 반미'와 '반중 친미'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지난 역사의 뼈까지 아팠던 설움과 아픔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찬란한 오월이 다가오는 계절에 지혜와 명철이 이를 데 없고, 난초같이 고귀하고 품위 있는 수려한 인물들이 지난 역사를 냉철하게 돌아보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첫 자리다.